[전차 군단 준우승 청부사] 미하엘 발락 등번호, 소속팀, 선수 시절 등
안녕하세요. 알아 두면 쓸모 있는 흥미로운 축구 사전의 지은이입니다.
오늘은 독일 전차 군단의 심장, 준우승 청부사로 불린 미하엘 발락(Michael Ballack)에 대해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미드필더 중 하나로 뽑히는 미하엘 발락은 지금까지도 세계의 많은 축구팬들에게 독일 축구의 전설로 소개되며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전력이 약해진 독일 축구가 녹슨 전차 군단이라는 소리를 들을 무렵, 부흥을 일으킨 중심에 있었던 선수 미하엘 발락은 189cm의 압도적인 피지컬과 양발 사용 능력으로 미드필더 내에서 활동이 불가능한 포지션이 없을 정도로 만능 플레이어였습니다.
그렇다면 미하엘 발락이 은퇴한 지 꽤나 오랜 시점이 지난 상황에서도 어째서 계속 회자되고 있는지, 과연 현역 시절에는 어떤 플레이들을 보여줬는지 보다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76년 동독에서 태어난 미하엘 발락은 1995년 독일 분데스리가 켐니츠 FC에서 데뷔한 후, 97년 FC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이후 운이 좋게도 곧장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99년부터는 명문 구단 레버쿠젠에서 새로운 선수 생활을 시작합니다. 레버쿠젠에서 기량이 올라오기 시작한 발락은 독일 분데스리가와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이라는 큰 업적을 남기기도 하지만, 사실 이때부터가 발락이 '준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시작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 2002년에는 한일 월드컵 당시 하락세를 겪고 있었던 독일의 준우승이라는 업적을 이루어 내는데 미하엘 발락이 한 몫을 했습니다만, 이 역시 결과적으로 우승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당시 미하엘 발락이 없었다면 독일이 준우승을 하는 것 조차도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라는 많은 축구팬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하엘 발락은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02년에는 레버쿠젠을 떠나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게 되면서 무려 3차례의 리그 우승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06년에는 자국에서 개최한 월드컵에서 결승에 진출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준우승에 그치며 발락 개인에게는 아쉬운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더불어 좋은 기량과 소속팀 리그 성적에도 불구하고 바이에른 뮌헨이 챔피언스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게 되면서, 지친 발락은 첼시 13번으로 이적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마케렐레와 에시앙, 램파드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미드필더에 밀려 첼시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발락은 이적 초반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07년에 들어서면서 램파드의 부상을 계기로 첼시의 중추적인 역할을 보여준 발락은 존 테리 결장 시 주장 완장까지 달고 경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EPL 최고의 미드필더로 성장한 발락은 그랜트와 스콜라리, 히딩크 및 안첼로티 감독 체제를 거치면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탈락의 고비를 맛보게 됩니다.

물론 첼시 마지막 해인 2010년에 프리미어리그와 FA컵 우승을 동시에 이뤄내면서 드디어 우승컵을 한 해에 두 개나 들어올리는 업적을 달성 하지만, 운이 나쁘게도 부상으로 인한 기량 저하를 겪으면서 첼시에서 레버쿠젠으로 방출되고 맙니다. 더불어 또다시 발락은 리그 준우승과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에만 그치며 수상에 실패하게 되고, 결국 2010년 월드컵 엔트리에도 소집되지 못하는 것을 계기로 자연스레 커리어를 마감합니다.
오늘은 역사적인 미드필더 중 하나로 뽑히는 미하엘 발락에 대해 소개해드렸습니다. 미하엘 발락의 선수 경력을 살펴보자면 타고난 신체적 능력과 미드 필더 어느 위치도 소화할 수 있는 완벽한 재능에 비해 큰 업적이 없는 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때문에 한 편으로는 비운의 축구 선수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직까지도 많은 축구팬들이 그의 실력을 의심하는 경우는 없는 만큼 확실한 최정상급 미드필더라기에 손색없는 선수인 듯 싶습니다.